
여름휴가는 바다, 그리고 강릉브루어리 바이 현
강릉브루어리 바이 현, 발효의 정수로 빚은 수제맥주
올해 여름 휴가로 해외 대신 선택한 것은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휴양지, 강릉.
그리고 그 수많은 관광 명소와 맛집을 뒤로 하고 이틀 연속 방문한 곳, 강릉브루어리 바이 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싶었으나, 인스타에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맛있다고 오버를 떨 수 밖에 없었던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좀 자세히, 차분히:) 해보려고 한다.
이걸 자체 생산해 맥주를 만든다고?
거두절미하고 이 브루어리에 대해 포스팅을 시작 하면 제일 먼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 이거다.
대한민국에서 효모를 직접 배양해 술을 만드는 단 하나의 브루어리라는 것.
유일무이. Only one.
하.. 엄청나지 않습니까? 효모를 직접 배양하고 발효해 맥주를 만든다니. 게다가 그 효모는 강릉을 대표하는 식재료인 과일과 곡물에서 채취한다고.
2017년부터 시작된 브루어리 자체 효모 배양은 이제 자리를 잡아 안정화 되었고, 예전에는 5개월정도 걸리던 맥주생산이 지금은 2개월정도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수제맥주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홉이나 몰트, 효모 등은 외국에서 들여오는 것이 대부분이고, 국내에서 생산한 홉과 몰트를 사용해 양조하는 수제맥주는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다.
하지만 효모. 발효의 과학으로 완성되는 맥주에 중요한 효모를 자체배양한다니, 이곳의 맥주 맛이 기대될 수 밖에.
강릉브루어리 바이 현 맥주 라인업

깔끔하게 한장으로 준비된 맥주 메뉴판의 구성이 정말 알차다.
라거부터 바이젠, 팜하우스에일, 헤이지IPA, 다양한 종류의 사워에일, 그리고 만나보기 어려운 타입인 임페리얼 스타우트의 베이스에 IPA풍미를 더한 블랙IPA까지.
또 블랑 드 강릉이라는 이름의 청주(약주)가 있고, 천연 크래프트 하이볼 2종류도 준비되어있다.
아, 그리고 메뉴에 보라색 글씨로 FOR ARMY라고 표시된 맥주는 BTS(방탄소년단)이 2021년 윈터패키지를 강원도에서 촬영할 때 이곳을 방문해 마셨던 것이라고 한다.
오.. 방탄도 즐긴 수제맥주, 그럼 이제 나도 마셔볼까.
궁금해, 다 마셔보고 싶어 선택했어, 첫 주문 샘플러.
더운 여름엔 큰 컵으로 벌컥 벌컥 마시는 맥주가 딱! 이긴 하지만 최대한 많은 메뉴의 맥주를 마셔보고 싶을 때는 샘플러가 정말 최고다.


강릉브루어리 바이 현 에는 기본 청주 1종에 맥주는 3종을 선택할 수 있는 샘플러가 있다.
내가 처음 선택한 맥주는 대관령필스, 호랑이곶감, 더블 헤이지 IPA.
그리고 첫날 주문한 안주는 모듬치즈 플래터. 5종의 다양한 치즈에 육포, 블루베리콩포트, 크래커, 다양한 견과류까지. 깔끔한 치즈가 맥주의 맛을 방해하지 않고 잘 어울렸다.
아, 참고로 사진 중에 샘플러잔이 아닌 것은 다음날 바로 재방문했을 때 주문했던 큰잔(500ml, 470ml)입니다.


1. 대관령필스 라거(Daegwallyeing Pils) ABV 5.0%, FOR ARMY
몰트의 고소한 향이 진하게 느껴지고 탄산감이 꽤 있는데도 목넘김이 부드러웠다. 일반 라거와는 다르게 묵직한 바디감이었고 생각보다 홉의 씁쓸한 맛이 끝에 조금 세게 느껴졌다.
2. 강릉브루어리 바이 현, 호랑이 곶감(Horang-i Gotgam) ABV 5.5%
무서운 호랑이도 겁내지 않던 아이의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든다는 그 무서운 곶감에 대한 옛 이야기가 생각나는 이름이다.
사실 강릉이 옛날에는 곶감생산지로 유명했다고 한다. 지금은 고급품으로 취급되며 아주 소량만 생산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곶감에서 채취한 효모로 배양해 만든 귀한 에일맥주 이다.
효모뿐만이 아니라 곶감도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진한 검붉은 색이었고 밸런스 좋은 열대과일의 향과 곶감의 향을 진하게 맡을 수 있었다.
중간 정도의 바디감으로 마치 메이플 시럽같은 특유의 달콤하지만 은은한 쌉쌀함이 느껴졌다. 드라이한 느낌이 있지만 끝까지 부드럽게 감싸는 달콤함이 정말 좋았다.
만약 이곳에서 딱 한잔만 마셔야 한다면, 고민 없이 호랑이 곶감을 선택할 것 같다. 그만큼 제일 마음에 들었던 맥주. 호랑이 곶감.


3. 더블 헤이지 아이피에이(Double Hazy IPA), ABV 7.5%
헤이지 IPA이지만 크게 탁하지 않은 외관이었고, 드라이한 맛이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IPA였다. 잡스러운 맛이 하나도 없이 IPA의 정석처럼 트로피컬한 향과 시트러스한 맛이 잘 느껴졌다.
4. 블랑 드 강릉 – 청주, 약주(Blanc de Gangneung – refined rice wine), ABV 12%
수제맥주 브루어리에서 마셔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청주가 있었다. 사실 나는 완전 맥주파라 샘플러에 포함되어있지 않았다면 주문 안했을지도.
그런데 이거 진짜 물건이다. 사케소믈리에 자격증까지 보유한 사장님이 만드신 청주이니 샘플러를 드시지 않아도 꼭 한번 마셔보길 완전 추천한다.
강릉 쌀을 이용해 강릉 브루어리에서 배양한 균을 사용하여 양조한 청주로 쌀의 양이 꽤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달콤하지만 정말 깔끔한 맛이었다.
색은 마치 페일에일같은데 도수가 꽤 있음에도 입에 감도는 순간 정말 고급스러운 향과 맛이 느껴졌고, 너무 달콤하고 부드럽게 넘어갔다.
2번째 샘플러 주문할 때 다른 맥주로 바꿔줄 수 있다고 안내 해주셨지만 놉(Nope). 이 청주, 맛있으니 바꿀 이유 1도 없었다. 심지어 다음날 재방문 시 한병 쟁여 왔다. 🙂
강릉 브루어리 바이 현, 두번째 샘플러, 그리고 완벽한 안주 화덕피자.


두번째 주문했던 샘플러는 바이젠, 블랙IPA, 사워에일인 오설. 그리고 다음날 재방문 할 때 주문했던 안주 화덕피자 마르게리타.
와… 피자..이거 진짜.. 미쳤다. 쫄깃쫄깃한 도우에 감칠맛 풍부한 토마토 소스, 신선하고 정말 맛있는 치즈까지.
수제맥주의 효모도 직접 배양할 만큼 발효에 진심인 사장님. 이것도 발효의 영역이라며 제빵까지도 공부하셨다고 한다.
강릉브루어리 바이 현 화덕피자, 맥주를 마시지 않아도 이 피자만 먹으러 갈 수 있을 만큼 추천이다.



5. 경포바이젠(Gyeongpo Weizen), ABV 5.5%
정말 깔끔하고 향이 좋은 기본에 충실한 바이젠이었다. 입안 가득 맥주를 머금으면 바나나향과 과일의 향이 풍부하게 느껴졌다.
바이젠은 특유의 콤콤한 향과 맛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포바이젠은 튀지 않고 밸런스 좋게 깔끔한 맛이라 바이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도 몇 잔이라도 마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6. 마스터SH 블랙 아이피에이(Master SH Tropical Black IPA), ABV 7.5%, FOR ARMY
임페리얼 스타우트의 베이스에 IPA의 풍미를 더한 맥주. 스타우트도 좋아하고, IPA도 사랑하는 나로써는 정말 최고의 맥주가 아닐 수 없었다.
스타우트의 달콤하고 묵직한 탄맥아의 바디감에 IPA의 쌉쌀한 홉의 풍미, 시트러스함이 정말 잘 어울려서 너무 무겁지 않게 두 가지 맥주의 맛을 모두 즐길 수 있었다.
첫 모금은 스타우트, 마무리의 맛과 향은 IPA.
사장님의 이름이 걸려있는 맥주인 만큼, 아, 그냥 미쳤네.. 소리가 절로 나오는 맥주였다.
캔으로 여러개 더 사오고 싶었지만 딱 1개만 남아있어서 정말 아쉬웠다. 더 마시고 올걸.
아, 이것도 BTS가 선택했던 맥주 중 하나로 지금까지 마신 맥주는 흑맥주가 아니었다며 극찬을 했다고 한다. 역시. 맥주 마실 줄 아는구먼!
7. 오설(오미자 맥주, O-SUL), ABV 6.0%
사워에일의 하나로 오미자에서 효모를 배양하고, 오미자를 넣어 단맛,짠맛, 신맛, 쓴맛, 매운맛을 느낄 수 있는 맥주 이다.
달콤한데 새콤하고, 새콤한데 또 쌉쌀하고, 쌉쌀한데 또 은은한 매운 맛이 끝에 감돈다. 사워에일이라 시트러스함이 조금 더 지배적이긴 하지만 오미자의 5가지 맛이 그대로 잘 느껴지는 맥주.



8. 포레스트 바질 2021 빈티지(Forest Basil Geuze 2021 VINTAGE), ABV 6.5%
강릉브루어리 바이 현 시트러스에일 4종 중 가장 맛있었던 맥주. 제목 그대로 자연발효 해서 4년을 숙성시킨 맥주와 무숙성 에일을 혼합해 바질을 넣어 만든 맥주다.
바질의 풍미가 향부터 맛까지 정말 풍부하게 느껴지고, 시트러스함이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맥주를 마시다보면 필연적으로 나오는 트림에서도 향긋한 바질의 향이 올라올 정도.
캔입이나 병입은 없고, 오로지 이곳에 방문해서만 마셔볼 수 있다고 한다. 1인 2잔만 주문이 가능하고 재고 상태로는 올해 말까지만 가능할 것 같다고 하시니 끝나기 전에 반드시 방문해서 마셔보길 추천.
9. 체리 사워 (Cherry Sour), ABV6.0%
체리에서 효모를 배양해 1년 숙성한 사워에일. 그냥 가벼운 새콤함이 아니라 체리의 농익은 맛에서 나는 달콤함 속에 사워한 맛이 은은하게 난다.
10. 펑키 멀베리 사워(Funky Mulberry Sour), ABV 6.0%
오디에서 효모를 배양해 1년 숙성한 에일. 소화가 절로 되는것 같은 느낌의 사워에일. 오디의 씁쓸한 맛이 홉의 맛과 잘 어울렸는데 오미자맥주인 오설과 비슷한 맛이었다.
자연발효된 산미가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오디의 달콤함과 잘 어울려 좋았다.
사실 사워에일인 포레스트바질, 펑키 멀베리 사워, 체리사워가 사진에 이름을 미리 적어두지 않았으면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색이 참 비슷하다. 조금 진하거나 연한정도.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새콤한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향이 전부 다르고, 혀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달콤함도 다 달랐다.
다만, 비슷한 느낌의 사워에일이니 연달아서 마시기보단 다른 맥주들 사이사이에 마셔서 입맛을 더 돋우게 하는 역할로 조금씩 마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여름 최고의 휴가지 강릉에서 만난 맛있는 열정의 수제맥주
내가 오픈런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맥주를 만드는 브루마스터를 만날 확률이 굉장히 높고, 수제맥주를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을 때 들을 수 있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어서 이다.
수제맥주가 정말 맛있는 이유는 그 안에 수제맥주를 사랑하는 브루마스터들의 열정이 녹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분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는 그 시간이 정말 너무 즐겁다.
이번에도 오픈런, 심지어 이틀 연속 방문을 하면서 발효에 진심이라 맥주에도, 청주에도 심지어 제빵까지도 열심이신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그 열정의 산물인 맥주를 맛있게 마시며, 나의 여름휴가는 더 완벽해져버렸다.
아, 비밀이셨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맥덕들도 많이 찾아주시길 바라는 마음에 이야기 할란다. 10월 말쯤유자를 넣은 스타우트가 새로 배치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나는 이미 가려고 마음 굳혔다.
여름의 강릉도 좋았지만, 이렇게 맛있는 맥주가 기다리는 가을의 강릉도 멋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